최근(2010년 2월)에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세계적 놀이공원인 씨월드에서, 조련사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해왔던 돌고래(killer whale)에게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놀이공원에 갇혀 생활하는 돌고래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불량 때문에 매일 많은 양의 소화제를 먹는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자연에서 살아가는 같은 종류의 돌고래들에 비해 수명이 거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도 그 소식을 접하기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가족들과 씨월드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그 동물들을 더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씨월드가 야생의 동물들을 포획해서 가두어 놓고 훈련시켜 공연을 하는 것은 오직 돈을 위해서다. 씨월드는 이미 많은 돈을 벌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야생동물들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 한국에서 살 때에는 들어보지 못한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필자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흔히 배우자를 인생의 반려자라고 하는 데에서 생긴 단어가 아닌가 싶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그다지 적절한 용어가 아닌 것 같다. 그 첫째 이유는, 대부분의 애완용 동물이 사람의 평균 수명에 훨씬 못미쳐 죽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외딴 섬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애완용 동물보다는 인간에게 더 정을 느끼고 부대끼면서 사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애완용 동물이 무엇인가를 채워주거나 조금 더 행복하게 해줄 수는 있겠지만,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인터넷에 올라온 2010년 한국 통계에 따르면, 반려동물의 숫자가 천만 마리이다. 그에 따라 휴가철에 버려지는 애완용 동물이 많다고 한다. 장난감 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는 애완용 동물들이 많은 셈이다. 서양에서도 버려지는 애완용 동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자기가 기르는 애완용 동물을 수술해서 장애동물로 만드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예를들면, 개의 꼬리를 자르거나 성대 수술로 짖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들, 고양이의 발톱을 뽑는 사람들, 개나 고양이가 번식을 하지 못하도록 불임수술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애완용 동물을 위해 수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편의를 위해서 그 동물들을 불구로 만드는 것이다. 이성을 가진 인간들 중에도 성욕을 억제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많은 애완용 동물들이 불임수술을 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발정기에도 어쩔 수 없이 금욕을 해야 한다. 주인이 돌아올 때 까지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있는 경우도 많다. 과연 이것이 그 동물들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행동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의 발로이다. 가끔, 사랑에 대한 삐뚤어진 관념으로 인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납치해서 감금하고 유린하며 상대방이 도주하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이 있다. 자기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에 몰두해서 자기가 일으키는 피해는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다.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심리적인 출발점에서는 그 범죄자들과 장애동물을 만들어 감금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개들이 마음대로 짖게 하자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가 온 집안을 할퀴고 다니게 하자는 것도 아니며, 그 동물들이 마음껏 바깥을 돌아다니며 종족을 번식시키게 하자는 것도 아니다. 첫번째로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사랑을 하라는 것이고, 둘째로는 책임을 다 하라는 것이다. 과거에 미국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쓰기 위해 잡아와 수술도 하고 종자개량도 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착취하고 마음대로 부려 먹고 죽이고 팔아 먹다가, 나중에는 흑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노예해방이 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그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마련하고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을 보라. 미국에서 흑인들의 숫자가 백인들을 앞질러 정치적 사회적으로 더 우월한 입장에 놓이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백인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애완용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은 위에서 필자가 언급한 학대행위를 중지하고, 반려동물에 합당한 대우를 받게 하며,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잘 보살피고, 사회적으로 늘어나는 애완용 동물의 숫자에 대한 대책 마련과 해결책 모색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야생동물을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들도 보인다. 심지어는 맹수를 이웃과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애완용 동물로 기르는 경우가 있다.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들인 것 같다. 야생동물이 좋으면 자기가 야생의 세계로 나가면 될 것을, 타인들이 위협을 느끼고 때로는 자신이 그 동물로 부터 육체적 공격을 당하면서도 굳이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나사가 하나 더 박힌 것인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옆 집에 사는 부부는 어린 아이 한 명 쯤은 어렵지 않게 삼킬 수 있는 큰 뱀을 집에서 키운다. 그 뱀을 생각하면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개고기를 먹어 남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과 남이 혐오감을 느끼는 뱀을 키우는 것은 상당히 유사한 느낌을 유발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