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있는 어느 영상 내용을 요약한다. 미국의 어느 코미디언이 노출 심한 옷을 입고 다니는 여자들의 말을 인용했다. “내가 몸을 많이 노출하는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해서 날 쉬운 여자나 창녀로 보지 마세요”. 그리고, 그 남자 코미디언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약 경찰 제복을 입고 거리로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경찰로 생각하겠지만, 난 경찰이 아닙니다. 미안하지만, 노출 심한 옷을 입은 여성들은 창녀의 제복을 입은 것이나 다름 없어 남들을 헷갈리게 합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관련된 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는 이렇다. 남성들의 뇌는 노출 심한 여자를 보면 그 여자를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그냥 성적 대상의 물건으로 인식한다.
여성들에게는 충격적이겠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 연구 결과에 공감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여성의 노출을 막으려고 해왔던 이유이다.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취급할 자유는 있지만, 그 전에 생각을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노출 여성들을 눈으로 보며 즐기고 그것을 고마워하는 남성들도 있지만, 그 남성들은 발정난 숫개처럼 되어 여러가지 형태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에 (이 부분은 2018년에 추가 했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수 많은 성추행과 성폭행이 단순히 여성의 노출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관련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기서 강조하지만, 성추행과 성폭행은 가해자의 인내력 부족이 직접적 원인이므로 전적으로 가해자의 잘못이다. 덧붙여서, 아무리 얼굴이 예쁜 여자도 한복을 잘 차려 입고 있으면, 그저 아름다운 한 여성으로 보일 뿐이지만, 그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있으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남성과 여성들 모두)은 판이하게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여자건 남자건 은밀한 부위가 아슬아슬하게 보일 것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로 부터 오해나 비난을 받을 각오는 해야 한다.
잘 가꾸어지거나 선천적으로 잘 타고난 여자들의 몸매는 진정 예술이지만, 그 속살은 대중의 눈을 즐겁게 하고 성적욕구를 자극하는 데에 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한 은밀하고도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써야 할 것이다. 잘 가꾸어지지 않은 몸이 노출되는 경우도 많이 보이는데, 그것은 일종의 공해이다. 특히, 앉거나 허리를 굽힐 때 바지나 치마의 허리선이 너무 내려가 항문이 곧 보일 것 같은 똥꼬뵐라 패션은 외모를 불문하고 진실로 역겹다. 제발 알아달라. 항문은 변태가 아니고서는 매력을 느끼기 힘든 부분이다. 매력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있던 매력도 달아나게 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노출은 자유이지만, 부작용이 따르는 자유이고 절제되어야 하는 자유이다. 현대 여성의 과도한 노출은 자존감이 결여된 행동양상으로 판단된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지극히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다. 독설가들은 창녀기질이라 말하기도 한다. 미국만 해도 겉모습 보다는 사람의 내면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아직 남아있다. 따라서, 아무리 외모가 뛰어나도 그 외의 부분이 'cool' 하지 못하다면 그 다지 매력을 못느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간단히 말해, 겉모습은 겉모습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유행에 책임을 돌리지만, 유행을 따르는 것은 자기의 표현이 아닌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고 남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의류업계의 상업주의에 휘둘리는 것이 최첨단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과도한 노출은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부추기는 경향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배고픈 자에게 자꾸 맛있는 음식 냄새를 풍기는 것은 예의있는 행동이 아니며, 그것은 굶주린 자로 하여금 음식을 훔치고 싶은 생각을 유발할 수 있다. 물론, 훔치는 자의 잘못이지만,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음식을 훔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자신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그냥 굶어 죽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남자를 적으로 생각하는 일부 여성 운동가들은 알아야 한다.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적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연구에 의하면, 건강한 성인 남자들은 내버려 두어도 평균적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성적욕구가 생긴다고 한다. 그러한 종족 번식의 본능을 주신 신께서 다행히 남자에게도 이성을 주셔서 그 욕구를 상당 부분 조절할 수 있게 하셨다. 하지만, 이성을 갖고 있지 않고 본능적으로만 살아 가는 동물들의 사회에서 성폭행으로 인한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 사회에서는 그토록 빈발하는 성폭행을 유발하는 촉매제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인간에게는 발정기가 따로 없다는 것 외에도). 그 중 하나는 도처에 만연된 외설문화인 것 같고, 또 하나는 여성들의 속살 보이기인 것 같다.
이슬람교도들의 여성 복장은 지나친 면이 있긴하지만 올바른 방법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들의 복장은 성적욕구를 전혀 자극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왠만한 사람이 보기에는 인간이 인간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과도한 노출의 여인들은 자신을 한 인간으로 보여지게 하기 전에 벌써 이성의 눈을 사로잡아 단순한 성적인 대상으로 먼저 인식되기 쉽다. 우리는 첫인상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 연예인들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연예인들을 부리는 사람들이 먼저 변화해야 하겠지만, 한 번 돈 맛을 본 사람들이 노출로 인한 막대한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렵다.
남자는 최소한 한 군데만 잘 가리면 되지만, 여자는 최소한 두 군데를 잘 가려야 한다는 것이 통념이다. 따라서, 남자 보다는 여자의 신체노출이 더 적어야 마땅하지만, 세상은 그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가끔 뉴스에 남자 바바리맨에 관한 기사가 난다. 하지만, 여자 바바리맨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여자들이 평소에 노출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남성들에 비해 바바리맨이 될 가능성이 적어서 인지도 모른다. 아직 나이가 어려 생각이 성숙되지 못한 여성이나, 암컷들이 짝을 짓기 위해 수컷을 유혹하는 것처럼 남성의 시선을 끌려는 미혼의 여성들은 그나마 이해는 간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결혼한 여자들도 버젓이 짧은 치마를 입고 가슴골을 드러내고.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어 자기의 속살과 몸매를 드러내고 싶어한다. 결혼 반지를 낀 기혼녀가 그렇게 다니면,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결혼했지만 아직도 다른 수컷을 찾고 있다'고 알리려는 것인가. 그렇게 내버려두는 남편들도 다소 이상해 보인다. 정상적인 남자라면, 자기 여자에 대한 뭇 남성의 성적 관심이나 시선을 기분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자기 아내가 무대위에서 속살을 보이고 다른 남자들이 그것을 감상하고 즐긴다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전혀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을 것이다. 하긴, 드물게 자기 마누라를 몸 팔게 했다는 남편도 있고, 다른 부부들과 단체로 상대를 바꿔가며 즉석에서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박애주의자들(?)'도 있다고 들었지만.
여자의 입장은 어떨까. 필자의 아내나 여동생들은 과도한 노출을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절제된 복장을 고수하는 많은 여성들을 보았다. 필자의 딸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살아왔으며 현재 고등학생이고 한창 패션과 멋부리기에 관심이 많다. 필자의 기준으로는 약간 불만이지만, 과도한 노출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TV를 같이 보다가 노출이 심한 여성이 나오면 필자의 눈을 가린다.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여성은 과도한 노출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것 같다. 한국의 TV 방송에는 여성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복장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듯한 모습이 자주 보인다. 예를들면, 가슴이 파인 옷을 입고 인사할 때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는 경우, 또는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의자에 앉았을 때 담요로 다리를 덮고 있는 경우이다. 그렇게 부끄럽고 불편한 옷을 입지 않으면 손이나 담요로 가릴 필요도 없어진다. 어떤 여성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혹시나 더 깊은 곳이 보일까 안절부절하거나, 아무 생각없이 뒤따라 오는 남자를 마치 의도적으로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따라 오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필자도 골똘히 다른 생각에 잠겨 걷다가 당한 적이 한 번 있는데, 그 기분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 이후로는 계단 근처에 다가가면,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거나 이미 올라가고 있는지 확인을 하여 미리 피한다. 현대의 남성들은 어디를 걸어가건, 주변에 노출이 과도한 여성이 있을 때에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기의 시선을 잘 관리해야 한다.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기 전에 만약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올라가려 하거나 올라가고 있을 때에는, 그 여성(들)이 완전히 다 올라갈 때까지 시선을 돌리고 기다리지 않으면 자칫 성추행범으로 의심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의상은 본인들의 섹시함을 드러내고 어떤 남성들의 눈길을 끄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본인과 타인들을 동시에 불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남성도 노출을 조절해야 여성들을 설득할 수 있다. 남성들의 노출은 사회적 문제가 될 수준이 아니지만, 아무데서나 자기의 속살을 보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나는 안다. 나의 생각에 돌을 던질 남자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기 몸을 자기가 스스로 보여주겠다는데, 그것도 공짜로, 네가 무슨 상관이냐. 나는 여자들의 속살을 보는 것이 즐겁다. 너는 고자냐, 아니면 동성 연애자냐." 필자도 물론 때로 눈은 즐거우나 언짢을 때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성욕을 자극하니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여자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는다. "보기 싫으면 안보면 될 것 아니냐." 요즘에는 노출녀가 너무 많아 안볼래야 안볼 수가 없다. 눈 뜨고 걷거나 운전할 때, TV를 볼 때,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때로는 내가 죄를 짓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보수적 기독교인의 시각이나 이슬람교도의 시각으로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남의 여자 또는 남의 여자가 될 사람의 속살을 내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입장에서도 신체의 노출을 적극 권장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필자가 굳이 종교적인 입장이나 견해를 들먹이는 것은, 종교가 세속에 물들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부분이 많아 수정과 정화가 필요한데, 가장 좋은 방법은 올바른 종교를 통한 교화가 아닌가 싶다. 최근에 프랑스에 누드 골프장이 생겼다고 한다. 남녀를 막론하고 완전히 누드로 골프 경기를 하는데, 우스운 것은 몸은 완전히 노출하면서도 얼굴에 쏟아지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광경을 한 번 상상해보라. 벗은 몸매가 훌륭하지 않은 사람들은 제발 거기서 골프를 하지 말아야 할텐데 .....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노출이 적당한가? 속살의 기준은 사람마다 문화마다 다를 수 있지만, 한국과 미국의 사회 통념에 바탕을 둔 필자의 생각을 피력하자면, 위로는 가슴골이 드러나는 선, 아래로는 무릎이 그 경계가 아닌가 한다. 여성의 가슴골이 드러난다는 것은 젖가슴의 일부분이 이미 노출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릎위의 허벅지는 중요 부위에 가깝고 치마 밑으로 보이는 여성의 허벅지는 많은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니, 무릎 위가 보이는 것은 결국 성적인 자극으로 이어진다. 스포츠나 예술행위에 있어서는 약간 다를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예술에서도 가릴 곳은 가리거나, 속살 노출을 아예 회피하는 여배우들도 있다. 돈을 위해 몸을 팔지 않겠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으로 보여진다. 또한, 무엇을 하든지 때와 장소를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들은 그 정도만 보여주어도 충분히 아름답다. 싼티나고 육욕적인 관능미 보다는, 다소 정갈하고 단정해 보이는, 또는 여신과 같은 품격을 갖춘, 또는 청순한, 몸으로 표출하기 보다는 내면에서 밀려 나오는 부드럽고 포근한, 그러한 여성미를 많은 여자들이 추구한다면, 이 세상은 더 밝아지리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 외에도, 자신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필자가 가르쳤던 대학생들 중에, 항상 필자의 기준 보다도 더 엄격하게 옷을 입는 미국인 백인 여학생이 있었다. 그 어떤 섹시한 여학생들 보다도 여성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더욱 고귀하게 보였고 한 편으로는 기특하게도 생각되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흉터 때문에 보수적으로 옷을 입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학생이 공부에 있어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고, 외모가 출중하지도 않았으며, 다른 어떤 특징이 없었지만, 절제되고 수수한 복장만으로도 기억에 남는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지극히 존중하는 미국에서도, 많은 고등학교가 dress code라는 것을 만들어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과도한 노출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는 것은, 노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확실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