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는 너도 나도 이혼하고 재혼하고, 또 이혼하고 ..... 예전에는 이혼이 서양에서만의 사회문제였지만, 과도한 외제 선호사상 때문에 타국의 좋지 않은 문화를 흡수하는 데에 발빠른 한국 사람들의 이혼률이 왠만한 서양국가의 이혼률을 앞질렀다고 한다.
어쩔 수 없어 이혼을 해야하는 경우는 논외로 하자. 예를들면, 배우자가 바람둥이여서 도저히 같이 못살겠다든가, 마약이나 술에 심하게 중독, 또는 그로인해 가족을 구타하는 경우 처럼 극단적인 경우에는, 필자도 이혼을 권장하고 싶다.
요즈음에는 단순히 인내력, 이해력, 적응력의 부족과 이기심으로 이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철 모를 때 너무 일찍 이성을 알게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 같다. 일본에서 파급된 황혼 이혼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결혼 전에, 이 사람 저 사람과 동거하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똥개와 같은 습성을 버려야 한다. 결혼하겠다는 생각으로 동거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인간은 발정기가 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달겨드는 똥개와는 구분되는 동물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문란하게 생긴 자식을 낙태시키거나 낳아서 버리는 것이 더 큰 죄악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그런 죄를 저지르기는 하지만. 결혼 전 동거를 하는 상당 수의 사람들은 (특히 젊은 세대), 살다가 이혼하느니 이 사람 저 사람과 살아보고 잘 맞는 사람을 골라 결혼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성인 남녀가 같이 사는 것은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결혼생활을 하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살다가 헤어질 경우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을 뿐 사실상 이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주 운이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에게 잘 맞는 사람을 찾으려면 몇 백 명의 상대와 살아 보아도 부족할 것이다. 단순히 짧은 생각이거나 자기 합리화를 하려는 것일 뿐이다. 자기에게 맞는 사람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상대방에게 맞추어 살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기에게 100% 맞는 사람은 없을 수도 있고, 있다고 하더라도 평생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운이 좋아 95% 정도 맞는 사람과 살더라도, 나머지 5%에 자기 자신을 맞추지 못하여 불협화음이 생기면 여전히 이혼할 수 있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래도 가능한한 자기 이상형에 가까운 상대를 만날 때까지 동거를 통해 여러사람을 겪어 보고 싶다고. 필자의 경험으로는 그것도 역시 짧은 생각이다. 결혼은 연애가 아니고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만약 평생 아름다운 사랑으로 기억하고 싶다면, 동거하거나 결혼하지 않고 서로 많이 사랑할 때 그냥 헤어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같이 살면서 겪는 많은 것들은 아름다운 사랑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고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무뎌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절실하게 보고 싶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저절로 얼굴 보고, 같이 밥 먹고, 같은 화장실을 쓰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같이 해결 해나가야 한다. 다른 가족들, 친척들과의 관계, 자녀의 출산, 육아, 교육에서 빚어지는 의견차이, 나이가 들면서 부각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등은 서로간에 갈등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그런 때에 중요한 것은 이상형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얼마나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느냐이다. 작은 가족사회에서의 적응력과 인내심, 그 안에서의 사회성이 중요하다. 이상형 또한 다른 것들 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쉽다. 20대에 이상형을 만나 결혼 했는데, 30대나 40대가 되어서는 이상형이 달라져 결국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혼식 때 혼인 서약을 한다. 미국에서는 대부분 성직자가 주례를 서며, 한국에서 하듯이 신랑과 신부에게 서약 내용을 묻고 주례와 하객이 신랑 신부의 대답을 듣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했던 그 혼인 서약이 무색할 정도로 금방 쉽게 이혼들을 한다. 도대체, 혼인 서약은 왜, 무슨 생각으로 했는지 쉽게 이혼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성직자가 주례를 선다는 것은 그 만큼 결혼을 성(性이 아니라 聖)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聖스러운 결혼을 쉽게 깨버리는 것은 생각있는 사람들이 취할 행동이 아니다. 이혼이 사회에 미치는 구체적인 부정적 영향은 여기서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조금이라도 이혼할 생각이 있으면 결혼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다. 만약 미성년의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과 자손들에게 큰 불행을 안겨주는 것이며, 자식들이 성장한 후에 이혼한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큰 문제도 없이 이혼을 한다면 자식과 사회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어느 유명한 남자 연예인이, 젊어서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고 나이들어 후회와 참회로 얼룩진,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부끄러웠던 과거를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왠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결혼을 반복한 사람들은 이성간의 사랑이 다분히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간혹 영원한 사랑인 것 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 세상에는 로맨틱한 사랑보다도 더 소중하고 그래서 지켜나가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끝없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한 명의 배우자와 사는 사람들의 눈에도, 이 세상에는 매력적인 이성들이 많이 있다. 자신의 배우자가 너무 좋아서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이혼하지 않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의 약속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들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게 된다. 흠잡을 것 없이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최소한 기본적인 의무는 다 했다는 안도감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후회를 최소화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혼과 재혼이 성장한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들고 싶다. 필자가 가르쳤던 한 미국인 여대생은 방학 때에도 갈 곳이 없어 친구들이 사는 곳을 여기저기 전전한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아서 알 수 없고, 어머니가 재혼을 했는데 의붓아버지가 이 학생이 집에 오는 것을 싫어해서 엄마가 보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행기로 네 시간 정도 가야하니 차로는 이틀을 가야한다). 방학 중에는 기숙사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아파트를 따로 얻어야 하는데, 단기간에는 방을 얻기 힘들거나 훨씬 비싸서 돈을 충분히 벌거나 부유한 학생들이 아니고서는 아주 불편하다. 그래서 방학이면 친구들 신세를 지거나 잠시 아파트를 비우는 사람들에게 적은 양의 셋돈을 주고 방을 빌려 쓰는 것이다. 방학이어도 딱히 갈 곳이 없는 이 학생을 학교에서 마주 칠 때 마다 너무나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졸업하고 직장을 얻어 그동안 받은 학자금 융자를 여러 해에 걸쳐 다 갚기 전에는 경제적 독립이나 자유를 누리기도 힘들 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는 학비도 비싸서 만약 취직이 되지 않거나 보수가 충분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미래는 더욱 암담해진다. 침체된 현재의 경기가 하루 빨리 풀려야 그 학생도 삶이 더 나아질텐데 .....
인간 대 인간이 만나서 함께 살아가는 결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싸우고 홧김에 이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결혼은 소개팅이나 미팅과 같은 일시적 즉석 모임이 아니다.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혼은 인생의 두 동반자가 고난을 헤쳐가며 삶을 함께 일구어나가는 것임을 부정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결혼식에서의 맹세를 지키고,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것만으로도 자기가 속한 사회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부터, 약속을 지키고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철저하게 교육시켜야 할 것 같다. 필자를 포함한 책임감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약속은, 어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하는 것이며, 무책임함은 결국 다른 구성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주게 된다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지는 못할지언정, 남에게 피해는 주지말자는 사고방식을 고수 한다면, 한국은 적어도 일본 보다는 여러모로 더 나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