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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改運)은 가능한가?

ylee88 2018. 11. 22. 23:27

개운(改運)이라는 것은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yes and no이다.  다른 글에서 필자가 썼던 내용의 일부를 이 글에 맞게 약간 수정하면서 시작하겠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개인의 운 보다는 나라의 운이 우선이고, 국가에 따라 법 체계와 문화와 환경이 다르므로 거기에 알맞는 운명의 해석이 필요하다그리고, 전쟁을 겪는 나라에서는 그 기간에 운 나쁜 사람들이 죽거나 불구자가 되기도 하지만, 운 좋은 사람은 그 기간에 오히려 큰 돈을 벌기도 한다국가 경제가 위기에 빠져도 운 좋은 사람과 운 나쁜 사람들 간에는 차이가 있다우주의 무수한 별들이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듯, 지구 표면에 붙어 사는 우리 인간은 지구의 운명, 그리고 태양계와 우주 변화의 원리에 따라 살 수 밖에 없다운명론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다자신의 노력으로 인생을 바꾸는 것은 운명이 허용하는 범위, 즉 신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그 어떤 범위가 있다고유명했던 3 김씨 중에 야권 출신 김영삼과 김대중 씨는 기어코 대통령이 되었지만, 쿠테타 정권에 동조했던 여권 출신 김종필은 결국 포기해야 했던 것 처럼, 정치인들이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다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권력에 집착했던 김종필의 야망이나 노력이 다른 두 사람들에 비해 부족했을리 만무하다. 독자가 만약 신을 믿고 있다면, 이미 운명론을 절반은 믿고 있다고 할 수 있다왜냐하면, 적어도 신이 각자를 태어나게 했다고 믿으며,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신의 뜻에 의해 살아간다고 생각하니까.” 

 

위의 부분을 읽은 독자는 왜 필자의 생각이 yes and no인지 이해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어느 정도는 노력과 기도로 바꿀 수 있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어 있을 확률이 많지만, 알다시피 대부호들은 모두 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현재의 상황을 약간 호전시킬 수 있고, 장기적으로도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는 방법들은 여러가지 존재하지만, 인생을 완전히 뒤바꿀 수는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기꾼이거나, 착각 속에 빠져 타인과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인생을 정말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이 사용된다면, 이 세상은 대혼란에 빠질런지도 모른다.  위에서 언급했듯, 신이 허용하는 범위, 즉 운명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운명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개운(改運)이 가능한 것이며, 그 범위를 알고자 하는 것이 운명학을 공부하는 목적들 중의 하나이다.  원하는 만큼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운명학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운명학은 기상학의 일기 예보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가올 날씨를 미리 알면, 그것을 이용하여 거기에 맞게 계획을 세우거나 대비해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그 날씨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날씨 얘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덧붙이겠다.  일기예보가 맞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기상청을 비난하지만, 그들은 정확한 일기예보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조차 못한다.  예를 들어, 태풍의 경로를 예상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존의 데이타와 과학적 이론과 수학을 이용한 아주 긴 컴퓨터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슈퍼 컴퓨터로 엄청나게 많은 계산을 거쳐야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예측하는 것도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다.

 

인생역전을 하는, 그러다가 또 곤두박질 치기도 하는 사람들은 타고난 운명이 그런 것이고, 신의 뜻이 그런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최순실 등등 예는 많다.  그 사람들은 막강한 권력과 부를 갖고 있었기에 그것들을 죽을 때 까지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을 가능성이 많은데, 그들이 만약 운명을 바꿀 수 있었다면 지금 한국의 모습은 어떠할까?  예를 들어,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살해되지 않았었더라면, 독재가 얼마나 더 길게 지속되었을 것이며, 과연 전두환이 국민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는 일이 생겼을까?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어이없는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 배후에는 자신의 아버지로 부터 물려 받은 엄청난 경제력, 공화당의 정치적 이기심, 그리고 그를 잘못된 이유로 지지했던 우매한 국민들이 만들어낸 어떤 총제적 운명이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는 박근혜의 탄핵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한국으로선 적어도 그 부분에서 어부지리를 취한 셈이다.

 

사실상,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어느 스님의 운명론과 개운론 때문이다.  그 스님이 개운론을 크게 강조하지는 않지만, 유튜브 동영상 강의와 책을 통해 분명히 현재와 미래의 운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한다.  운명과 개운은 약간의 상관 관계가 있지만, 어느 정도는 서로 모순되는 부분도 있다.  적어도 몇 백 년을 이어온 사주 명리학에서는 지구에 미치는 태양의 영향을 중심으로 만든 절기력에 따라 생년월일시를 사용하는데, 그 스님은 음력 생일의 월과 일만 가지고 계산한 운명수라는 것을 이용하고, 그 운명수는 기본적으로 9가지이며, 최대한 12가지 뿐이다 (월의 숫자와 일의 숫자가 별도로 갖는 의미도 있고, 운명은 심상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주장하니 단순히 12가지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는, 책에서 사주팔자 조합의 갯수와 그에 따른 한계를 운운하며, 운명은 정해져 있을 수가 없고 많이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숙명과 운명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은 맞다.  스님은 사주팔자 조합의 갯수가 2만여 개이니 일 년 동안 한국에서 출생하는 인구를 고려하면 턱 없이 부족하다고 했으나, 이는 자신의 무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필자가 다른 글에서 보였듯이, 사주팔자는 그 조합만 20여만 개이며, 실제 통변에서 사용되는 몇 가지 변수를 고려하면 거의 3백만 가지의 해석이 나온다.  스님이 그런 식으로 과거에 사주 명리학을 공부했으니, 그야말로 헛 공부를 한 셈이다.  그리고는, 기존의 운명 판단법에서 크게 간과한 이론적 기술적인 오류와 미비점을 찾아냈다고 주장하니 황당하기 그지 없다.  수학 실력이 부족해 자신이 숫자를 잘못 계산한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사주팔자에 관한 서적들 조차 제대로 읽어 보지 않고 지적을 한다는 증거다.  그런 스님이 숫자를 이용해 운명을 판단하는 방법을 만들었고 더구나 개운을 언급하다니, 더 이상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복잡 다단한 사람의 인생을 논함에 있어서, 그 스님이 왜 그토록 간단한 이론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스님처럼 월과 일만으로 운명을 예측하면, 일 년 동안 365가지의 경우 밖에 생기지 않으며(그것이 매년 반복됨), 거기에 3단계로 나뉘는 심상을 곱하더라도 365*3 = 1095의 다른 경우가 생기는데, 어떤 생월일의 운명수는 4단계의 심상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2000개가 되지 않는다.  이런 극도로 빈약한 이론을 이용해 인간의 운명을 논하고 사주 명리학의 한계를 지적하려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여하튼, 그런 연유로 스님의 이론이 사주 명리학 보다 경우의 수는 오히려 훨씬 적지만, 그 대신 아주 간단해서 누구나 배우기 쉽고 사주 명리학에 비하여 장점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기는 하다 (정확하다면).  이론이야 어찌되었든, 예측이 정확하면 필자는 거기에 수긍할 수 있다.  운명론은 정확도가 생명이니까.  스님은 자신의 이론이 경악할 만큼정확해서 두렵다고 하며, 같은 운명수의 날짜에 벌어졌던 큰 사건들을 나열하는데, 그 운명수의 날짜는 일 년 동안 여러 번 나타나며 그 때 마다 큰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어떤 때에 큰 사건이 벌어지고 어떤 때에 무사한지를 알아야 그 이론이 쓸모있을 것 아닌가.  그 부분을 설명하지도 않을 뿐더러 (설명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임) 그런 질문 받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리고, 필자의 음력 생월과 생일을 직접 그 이론에 대입해 보니 맞는 부분도 약간은 있지만 (스님도 강의에서 똑 같은 생월일에 대해 언급했다), 사주 명리학 보다 훨씬 적중률이 떨어진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다.  년월일시를 이용하는 이론과 월일만 사용하는 이론 간에는 당연히 적중률에 있어서 큰 차이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음력 생일도 인간의 운명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겠지만, 그 보다 태양과 지구의 관계를 기준으로 한 절기력의 영향이 더 크며, 태어난 년도와 시간도 분명히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실례는 무수히 많고, 스님의 이론으로는 그 부분이 설명되지 않으며, 본인도 설명하지 못하고, 그런 의문을 갖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또한, 스님은 사주 명리학에서 사용하는 절기력이 양력이라고 생각하나, 절기력과 양력은 100% 동일한 것이 아니다.  단순한 무지의 소치로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잘못되거나 부족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운명학에 계속 매달리면 결국 아주 새로운 이론을 만들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이론이 틀렸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기존의 이론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스님의 방법을 통해서 개운(改運)하지 않은 수 많은 사람들의 운명은 기껏해야 2000가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개인의 이름이나 풍수지리의 영향은 어차피 별개의 것들이어서 사주 명리학과도 접목할 수 있는 것들이니 여기서 논의할 필요는 없다.

 

필자가 그 스님의 블로그에 나름 예의를 갖추어 질문을 몇 개 올렸는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의 일부도 그 질문들에 포함되어 있었다).  스님이 먼저 필자의 질문에 대해 자신의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적으로 신랄한 비판을 했으니, 인과응보를 논하는 불자로서 자신도 그에 대한 비판을 받는 것에 대해 불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블로그들이 보통 그렇듯이 각각의 글마다 허용된 글자 수가 어차피 300자 이하인데 (대 여섯 줄 이하), 질문을 너무 길게 쓰면 앞으로는 답변을 하지 않을 것이니 한 두 줄로 간단히 설명하라고 했다.  어느 정도 자세히 설명을 해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거나 질문을 오해할 수 있는데, 한 두 줄로 얘기하면 의사소통이 더 어렵고 심도있는 토론이 힘들지 않겠는가.  필자의 질문이 너무 많다고 꾸지람을 했지만 (필자가 5개의 질문을 일 주일에 걸쳐 올렸고, 질문하는 페이지에 오직 다른 한 사람만 두 개의 질문을 올렸음), 스님 본인이 확실하게 설명하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했던 부분을 제대로 설명했었다고 잘못 기억하고, 아마도 자신의 이론이 백발백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자가 올린 근본적인 질문들을 아예 무시했는지도 모른다.  스님이 자기 이론의 근본적인 것들에 대한 내용은 대답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필자는 단순히 질문을 했을 뿐이지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대답하기 싫으면 답글에 그냥 그렇게 쓰면 그걸로 충분한데, 별도로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어서 거의 20분 동안을 필자의 질문에 대해 답변은 거의 하지 않고 잔소리만 해대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양식이다.  그리고, 본인은 질문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겠다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왜 그 스님이 도대체 필자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의아해 할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했다 싶었던지, 20분 짜리 동영상은 삭제하고, 그 이후의 강의에서 필자에게 하는 사과 비슷한 얘기를 잠깐 언급하며, 문자를 보내면 선물을 보내주겠다고 했으나, 필자는 스님의 사과는 받아들이되 굳이 문자를 보내 선물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필자의 직설적이며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은 일언반구도 없었고, 그에 대한 답도 없었다.  추측컨대, 자신의 이론이 근본 부터 흔들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약점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언짢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동영상 강의도 보통 그런 식이어서, 어떤 사람들은 불평을 하지만 필자는 불평없이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혹시나 사주 명리학을 보완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님의 강의는 핵심 없이 중구난방이거나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타인을 가르치는 데에는 적성이 맞지 않는다.  자신의 두서 없는 강의가 대본 없이 하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는데, 책을 두 권이나 쓰고 많은 사람의 운명을 감정했다는 프로 술사라면, 강의의 주제만 생각해도 내용이 체계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운명학을 강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이 모두 대본을 만들어 외우거나 읽는 것은 아니다.  책을 달랑 한 권만 쓴 어느 운명학 저자의 웹 싸이트에 필자가 근본적인 질문을 두어 번 했을 때, 그 저자는 질문을 잘 이해하고 전혀 불평없이 모든 답변을 성실하게 해주어서 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운명론에 관한 책을 거의 같은 내용으로 두 권이나 집필한 이 스님은 필자가 질문했을 때 그에 대한 반응이 독선적이고 위압적이었다. 

 

필자가 생일이 같은 두 연예인의 운명이 왜 그토록 다른지에 관한 질문을 하면서 (한 명은 몇 년 전에 세상을 등졌다), 이미 언론과 인터넷에 자세히 알려졌기 때문에 실명을 거론하겠다고 했는데도, 필자의 나이에 비해 아주 듣기 민망한 꾸지람을 들었다.  정치인들은 실명을 거론해도 되지만 연예인들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라는 말은 맞지만, 어차피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인터넷에 모든 자료가 이미 다 공개되어 있는데, 인터넷 상으로 그것을 토론하면 안된다는 논리와 정서는 이해할 수 없다.  혹시라도, 그 질문에서 필자가 정곡을 찔러 기분이 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몇 몇 책들은 연예인들과 운동 선수 등등 다른 유명인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사주팔자를 논하고, 과거사와 미래사 까지 토론한다.  필자가 질문했던 연예인들과 그 외 수많은 연예인들도 어느 유명한 저자의 책들에 사주풀이가 나와있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저자는 많은 연예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로 고소라도 해야하는가).  이유가 그것이라면, 왜 스님의 동영상 강의에서는 공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 최순실 얘기는 했는지 묻고 싶다.  정치인들은 공인이지만, 그 사람들을 비판하면 분명 당사자들이 좋아하지는 않을 텐데, 언론인도 정치인도 아닌 스님 자신은 왜 유튜브를 통해 그런 공공연한 비판행위를 해도 되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잣대로만 판단하니, 독자들로서는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결국, 자신이 비판했던 정치인들에게 개인적으로는 미안하다고 동영상 강의에서 밝혔다.  미안할 일은 애초에 왜 하는지.

 

필자는 그 스님으로 인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실감했고, 더 이상 질문하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어지게 만드는 답글이어서, 그냥 고맙고 죄송하다고만 썼다가, 동영상 비판에서 필자의 질문을 지워달라고 하기에 결국 모든 글을 다 지웠다.  날을 새가며 재차 유튜브를 통해 모든 것을 필자의 탓으로 질책하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너무나도 편협해 보였다.  새로운 이론을 배우는 입장에서 이런저런 의문이 생길 수 있고, 그럴 때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 왜 잘못이란 말인가.  학교에서도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많으면 별도로 선생님에게 질문할 수 있다.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선생님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스님은 언론 탄압을 일삼았던 전두환을 싫어 하면서, 왜 자기는 자신의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의 언론을 탄압하는가.  동영상으로 판단할 때, 그 스님의 인성이나 생각에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당수의 블로거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조금이라도 언짢게 하는 글을 발견하면 일종의 적대감을 갖는 것 같았다.  질문도 자기의 마음에 들게 하지 않으면 싫어하며, 강의 중에 잔소리를 자주 한다.  질문은 이런 식으로 해야하고 저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언론사 기자들에게 기사를 이렇게 쓰면 안되고 저렇게 써야 한다고 언론을 탄압 조종하는 독재자들의 행위와 흡사하다.  필자는 강의 도중 인생에 도움되라고 해주는 얘기는 잔소리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심지어 자기의 강의를 듣고 배우려면 자기의 뜻을 거스르면 안되는 것 처럼 얘기한다.  마치, 박정희와 전두환이 자기가 대통령인 한국에서는 자신의 뜻에 따라 국민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은 논리다.  언론의 자유와 생각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21세기에는 통하지 않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다.  이 부분은 다른 인터넷 카페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 카페는 도사라는 사람의 왕국이었고,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강퇴를 시켜서, 회원 모두가 도사님을 신처럼 받들고 있어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연상케 했다).  연륜도 있는 스님이라는 불자의 수행이 왠만한 속세의 인간 보다도 부족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필자의 블로그에는 방문자가 많지는 않지만, 아무리 길게 글을 써도 상관이 없고, 반대 의견도 배척하지 않고 가능한한 논리적으로 그리고 충분한 설명으로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운명론에 관한 책을 여러가지 많이 읽었지만, 책의 저자가 적중률을 강조하면 할 수록 정확도는 떨어짐을 경험했다.  개인적으로 이해는 된다.  본인이 여러가지 운명론을 공부하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아니면 그런 이론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결과가 잘 맞지 않아서, 많은 시간을 들여 어찌어찌 나름 새로운 이론을 만들었는데, 몇 가지 시험해 보니 잘 맞는 것 같았을 터이다.  직업이 스님이라, 잘 맞지 않는 경우를 당한 독자들이나 상담을 요청했던 분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 말 없이 넘어간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스님은 본인의 이론이 무결점이라 믿는 것 같다 (실제 상담에서는 관상이나 그 밖의 방법을 동원하여 적중률을 더 높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기본 원리에 관한 근거가 많이 빈약하고, 마치 천기누설이라도 되는 것 처럼 근거를 아예 밝히려고 하지 않는데, 필자와 필자의 배우자 그리고 궁합 등등을 직접 풀어 보니 그 이론이 너무나 실망스럽다.  물론, 어느 정도 잘 맞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스님의 이론이 탁월하다 생각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어느 운명론이든 전혀 맞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맞는 경우가 있으니 책도 쓰고 상담도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온고지신 한 연후에 창조를 시도해야지, 기존의 이론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  지금까지 몇 천 명을 상담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자신의 이론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한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는데, 왜 이론의 적용 결과는 그토록 엉망인 것인가.  필자도 감히 이론에 문제가 있다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저 궁금한 부분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만 했으니, 이 스님은 아직도 자신의 이론이 정말 완전무결하다고 믿을 것 같다.  한 번 그렇게 믿으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다른 한 저자를 통해서도 경험했다 (자신의 이론이 최고라는 믿음).  그 스님의 이론을 공부하거나 추종하는 분들에게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만약 필자가, “스님, 저는 왜 스님의 이론이 거의 맞지 않습니까?”라고 단도 직입적으로 질문했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스님이 동영상 강의에서 옳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에 기초한 얘기를 많이 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아집 때문에 본인과 본인 이론의 문제점을 모르는 것은, 자신이 비판하는 정치인들과 내용이 다를 뿐,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어찌 하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을.  필자도 모르는 필자의 문제가 있을지도 모를 일.

 

어떤 운명론이든 한계가 있다.  그 한계나 예외적인 경우를 모른 채 이론을 사용하면, 언젠가는 허탈한 경우를 맞게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어떤 저자는 사주 명리학의 적용 범위를 과도할 정도로 많이 축소해버렸다.  사주 명리학도 그 한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통변하다 보니, 실제와 전혀 맞지 않는 사례가 드러나 엉터리 잡술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이론은 그것의 적용 범위 내에서만 사용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스님은 책에서 주역의 64괘를 모두 해석하고 그것을 사용하기 쉽게 표로 만들었으며, 그 공로는 인정할 만하다.  64괘의 적용 결과는 감히 적중률 따위의 말로 표현하기를 단호히 거부할 만큼 백발백중이라고 장담했는데, 그것은 결국 운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며 개운(改運)은 힘들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니, 자신의 이론에 상반되는 또 하나의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개운(改運)을 얘기하다 많은 넉두리를 늘어 놓았으며, 위에서 설명한 내용 외에도 스님의 이론에 문제점들이 있지만, 스님 책의 순진한 독자들이나 그 스님에게 상담 받은 분들이 너무 실망할 수도 있으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스님의 이론이 항상 정확한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긴 글을 마친다.